HOME > 설교말씀

그가 살아나셨고(마가복음 16:1-8)

  

 

   미가 6-7장, 나훔 1-3장, 하박국 1-2장

 

그가 살아나셨고, 마가복음 16:1-8, 167장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지나가고 새싹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다 죽은 것 같아 보였지만 생명의 씨는 그 씨앗 안에서 웅크려 때를 기다렸다가 봄이 되니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음이 아무리 강하게 보여도 새 생명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해마다 새움이 돋는 봄날 이때가 되면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이 부활의 소식을 꽃봉오리에 새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장 독극물을 먹고 거꾸러져야만 자살인 것은 아닙니다. 

생명에 해로운 줄 알면서 몸에 나쁜 것을 먹고, 나쁜 것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살입니다. 근심 걱정도 나쁘고 그리고 증오도 결정적으로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서 걱정하고 절망하고 잠 못 이루면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것이 자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에 신비가 있습니다. 출생의 신비와 죽음의 신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출생이라는 생명의 신비는 너무도 놀라운 것입니다. 

리아, 샤인

 

또 하나의 신비가 죽음이라고 하는 신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절대적이요 그리고 보편적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고맙게도 죽음은 공평합니다. 누구나 다 한 번은 맞이할 죽음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죽음을 대비해야 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늙는다, 거기서부터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미련한 자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지난 주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종려주일이었고,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의 날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의 승리의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전한 메시지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한 마디가 초대 교회가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기독교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시금석. 

현재를 사는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인 사실로 내 마음 속으로부터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은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확실히 밝혀 두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만약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 그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겁니다. 

 

러시아 모스코바 붉은 광장에 가서 레닌의 무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썩지 않게 방부제로 처리하고 항상 무덤 안을 섭씨 16도로 유지하여 지금도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 위해서, 

혹은 우리처럼 구경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누군가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내면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시체는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다시 살아나심,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한국교회는 부활절과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 가족이 복음을 들고 제물포 항에 도착해서 한국 땅을 밟음으로서 이 땅에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한국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장로교 선교사님이십니다. 아펜젤러 목사님은 감리교 선교사님이십니다. 그 당시 교회법은 먼저 도착한 교단의 선교사가 그 땅에 우선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두 분이 손잡고 같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사이좋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펜젤러는 도착 즉시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 편지를 보내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우린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도착 했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백성들을 묶고 있던 결박을 푸시고 그들을 주의 자녀로, 빛과 자유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이것은 불과 138년 전의 일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부활절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많은 분들이 부활절의 계란을 말씀합니다.

계란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으며, 

마치 겨울 뒤에 숨어있는 봄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 후에 계란을 하나씩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불쌍한 사람들도 구제하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교회의 사명은 부활의 신앙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그 마음에 심어주면, 그 인생은 병이 들었어도, 돈이 없어도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 땅의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때는 새벽이었습니다. 

2절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알패오의 아내)와 또 살로메가 찾아간 곳은 예수님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은 특별했습니다. 

본래 새벽이란 단어는 ‘처음, 시작, 발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새벽에 시작됩니다. 하루도 새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날 새벽은 온 세상을 향해 위대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제 새벽이 밝아지자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을 맞은 우리도 예수님이 무덤 문을 여신 것처럼 영혼의 창문을 열고 찬양을 같이 하도록 합시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안식 후 첫날 세 명의 여인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물론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확신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고, 다만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간 겁니다. 

그런데 동굴에 갔을 때 이미 굴을 막았던 큰 바위는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는 곱게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7절을 같이 읽습니다. 부활하면 갈릴리로 가겠다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21장으로 연결이 됩니다. 

제자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왜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가 아니고 갈릴리입니까? 

부활은 현재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실패의 자리일 수도 있고, 권태로운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진정한 부활이란, 엉망인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답은 언제나 지금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새 날은 어제 일을 잊고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새 달은 지난 달을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새 해 역시 묵은 해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지 못하면 과거에 얽매이게 되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진정한 생활 속의 부활이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나는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주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며 예수님 부활하신 새벽의 감격을 가슴에 새기고

힘차게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절 성찬식

고린도전서 11장 27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찬송 311장 1장 “내 너를 위하여”

 

초대와 응답

집례자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이 성찬식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들을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초청에 응하시는 모든 분들은  

이 거룩한 은혜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제정의 말씀(집례자)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떡과 잔을 받으시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떡과 잔을 나눔 144장  

(떡을 떼며) 이 떡을 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멘.

(잔을 들며) 이 잔을 마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멘.

 

성령 임재의 기원 

이 부활의 날에, 주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비취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온누리에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이 기쁜 소식이 가득하게 하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Comments